직업/약사

약대 생활

DrLaw 2019. 10. 11. 10:07

1. 약전 이전의 약대

 

내가 약대에 입학했던 것은 2003년이다. 지금과는 다르게 4년제였고 수능을 보고 들어갔던 시기였다. 의약분업이 시행된지 만으로 1년 조금 지난 시점이라 앞으로의 약사의 지위보다 이전에 약사의 지위와 역할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던 시기였고 우리 어머니도 그렇게 생각하셨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약대를 선택해서 들어갔고 내가 고등학생의 시각으로 봤던 학교생활과 직접 겪은 대학생활은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앞으로 다시 수능으로 약대 입학생을 뽑았을 때 어떤 커리큘럼으로 갈지 내가 찾아보진 않았지만 대강적인 이전 커리큘럼이 이렇다는 정도는 도움이 될 것 같아 글을 올린다. 물론 내가 다녔던 학교가 그런 것 일수도 있지만 다른 학교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2. 약대의 수업시간

 

1학년에는 한 학기에 전공과목이 2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 외에는 교양을 들었는데 4년 중 유일하게 교양을 들었던 시기가 1학년 뿐이었다. 그런데 4년 동안 160학점을 들어야 했었다. 전공으로 140학점 가량을 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어느 정도 수업량인지 고등학생들은 감이 오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의대, 약대를 제외한 과들은 졸업할 때 140학점이 요구되었고 교양의 비중이 우리 과보다 월등히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더군다나 의대는 6년간 160학점 가량이었고 약대는 4년간 160학점이었다. 내가 의전원을 다니면서 느낀 것은 수업량은 약대가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하지만 시험횟수는 의전원이 훨씬 많았다). 그도 그럴게 약대는 1학점 짜리이지만 4시간을 하는 실험이 매 학기 2개가 포진되어 있어 한 주의 시간표는 고등학생 시간표와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졸업에 성공하는 것과 어떻게 졸업하느냐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내 동기들을 보면 수업시간에 거의 수업을 듣지 않고 족보만 봐서 F를 면하고 무탈하게 졸업한 사람도 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약사면허만 받으면 일하는 것에는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일할 때 대학성적표를 떼어오라는 약국장(약국을 운영하는 약사)은 없다. 대부분의 약대 졸업생들의 진로는 약국이기도 하다. 따라서 공부를 안 하고 약사면허만 있으면 된다 싶으면 학점 스트레스 및 취업스트레스 없이 즐겁고 자기계발하고 여유있는 대학생활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학교이기도 하다. 현재 30대 중반이 되어서 생각해보건데, 대학교 때 다른 친구들이 고민하는 취업걱정이 없었고 취업이 되어서도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받으며 일했었다(물론 서울이면 얘기가 다르다). 그리고 직장상사와의 스트레스도 없었으면 정시출근 정시퇴근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학교생활을 할 때 과외를 3~4개 해서 부유한 대학생활을 하는 동기들도 있었다. 따라서 약대 학비가 부담되어 장학금을 받고 좀 더 하위 학교를 간다던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약대를 들어와서 과외를 하면 학비를 충당할 수 있으니 부담 없이 입학하면 될 것이다. 다른 과의 경우 학점관리를 빡세게 해야지 취업이 가능하지만 약대는 그렇지 않다. 학업에 신경을 많이 못 쓰더라도 졸업하고 약사고시도 충분히 합격할 수 있다. 약사고시는 4학년 2학기에만 모든 시간을 쏟는다면 이전 3년 6개월을 어떻게 보냈던지 상관없다. 따라서 학비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있다면 약대를 들어오는 건 타과보다 훨씬 큰 장점이 있을 것이다.

 

 

3. 약대의 주요 과목

 

나는 고등학교 때 약대를 가면 생물이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약대를 들어갔을 때 가장 유용하게 사용하게 되는 고등학교 과목은 '화학'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약물이라는 것은 화학적 화합물인데 그 약을 어떻게 합성하는지 그리고 그 약이 인체에서 어떻게 작용(약리학)하는지를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할 것이다. 약리학을 이해하는 기초는 화학(70%) + 생물(30%)라고 생각한다. 약대의 커리큘럼은 화학, 생물로 시작해서 유기화학, 생화학을 거쳐 약리학으로 도달하는 길일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화학과 생물에 관심이 있고 잘 한다면 약대 수업을 듣는데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약사가 되어서 하는 일과 약대 수업과는 어마어마한 간극이 있기 때문에 그 또한 다른 이야기이다. 첨언을 하자면 문과 출신들도 약대와서 공부를 하는데 큰 지장이 없다. 장학금 받고 잘 다닌 경우도 많으니 큰 걱정은 안 해도된다. 모든 공부의 베이스는 암기+이해이다. 암기만 된다면 약사고시까지도 잘 치를 수 있으니 걱정말고 들어오길 바란다.

 

 

4. 약대 특유의 생활

 

약대는 이수해야 하는 학점이 많아서 계절학기를 거의 필수적으로 들어야 한다. 즉 방학 중 한달 정도는 계절학기를 들어 학점을 채워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4년 간 160학점이면 1년에 40학점, 한 학기에 20학점이라 많지 않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실험 1학점이 매 학기 2과목이 들어간다는 점 그리고 4학년 2학기에는 국시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학점을 최대한 줄여놓아야 한다는 점 때문에 그렇다. 4학년 때 최대한 적은 학점을 들어야 하니 미리 땡겨서 계절학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방학이 좀 더 짧을 수 있으나 계절학기 과목은 비교적 널널하게 진행되고 학점도 잘 주는 편이라 방학 때 동아리 활동하면서 쉬엄쉬엄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반면에 내가 의전원에 다닐 때는 방학이 길면 4주, 짧으면 2주였기 때문에 방학 없이 보낸 적이 많다. 그에 비해 약대의 방학은 여유롭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약대생들은 동아리 활동을 다른 과와 같이 하는 경우가 드물다. 약대 내부 동아리가 있고 그 동아리에 속해서 활동한다. 약대동아리라고 하면 약대생들만 들어가는 동아리이고 중앙동아리라고 하면 모든 과가 들어갈 수 있는 동아리이다. 보통 약대생들은 약대동아리 활동만 하고 이 약대동아리를 통해서 여러 정보가 공유되곤 한다. 하나 조언을 하자면 굳이 정보나 인맥 때문에 동아리를 들어갈 필요는 없다. 약대를 졸업하고 나면 그 인맥이 일이나 직장을 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동아리 활동 하면서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게 더 마이너스이다. 오로지 재미를 위해 동아리를 하길 바란다. 그리고 본인이 활동적이라면 중앙동아리를 들어도 된다. 

 

 

5. 궁금한 점이 있다면

 

나는 어려서 주변에 아는 의사나 약사, 변호사가 있진 않았다. 물론 동네 약국 약사님, 의사 선생님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로를 상담하거나 실제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하는지 조언을 구하기는 어려웠다. 되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런 조언을 못 해줬던 나에게 해주지 못한 걸 어머니께서 안타까워하셨던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점은 고등학교 선생님께서 잘 아껴주셨고 많이 응원해주셨다는 점이었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처럼 혹은 대학교 시절처럼 꿈은 있지만 주변에 앞서 간 사람이 없어서 조언을 구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나에게 언제든 질문하여도 좋다. 학생을 걱정하는 학부모님이든 하루하루 열정을 가지며 살아가는 학생이든 그 꿈을 잃지 않고 하나 하나씩 이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