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약사

약대 졸업 후 진로

DrLaw 2019. 10. 15. 09:29

1. 들어가기에 앞서

 

졸업 후 진로에 대해서는 블로그나 나무위키 등에 많은 정보가 있을 것 같다. 따라서 이 번 글에서는 정형화된 내용을 피하고 내가 졸업 후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내 동기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지에 대해 적고 좀 더 날 것의 정보를, 약대를 곧 졸업하는 후배에게 술자리에서 해줄 법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2. 졸업 후 수련을 하는가?

 

의사와는 다르게 졸업하자마자 처음부터 약국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약사는 수련개념이 없고 있더라도 거의 무의미하다. 실제로 10년 전에 성모병원, 세브란스병원 등에서 전공약사라는 개념을 도입하고(서울대병원은 이전부터 시행했던 것 같다) 페이는 낮게 주면서 이것저것해보면서 전문인력을 양성하겠다는 말을 하였지만 실제 하는 일은 큰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전공약사로 들어갔던 동기는 회의감을 가지고 곧 그만두었다. 

 

 

3. 대다수가 선택하는 약국

 

졸업한 후에 대다수는 동네에 있는 약국근무를 선택한다. 아니면 대학병원에서 약사로 1~2년 길게는 3년 정도 근무하고 결국은 약국을 선택한다. 정확한 통계를 내보진 않았지만 동문들을 보면 90%정도 동네 약국을 차리거나 약국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근데 면면을 살펴보면 약국을 선택하는 게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시작하는 페이는 약국>병원=제약회사>공무원 정도 된다.

 

약국에서의 근무는 병원과 비교하였을 때 근무강도가 더 낮은 편이고 병원처럼 당직근무도 없기 때문에 이점이 있다. 게다가 약국을 차리게 되면 예상되는 수익은 개국약사>>근무약사>병원=제약회사이고 병원 및 제약회사에서 10년 간 연차가 쌓인다고 해도 개국약사(개업한 약사)에 비할 정도로 많이 벌진 못한다. 그리고 제약회사에서는 회사원으로서 조직문화를 겪어야 하지만(외국계는 그런 점이 덜하다) 약국근무는 소규모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덜하고 서로 약사님이란 존칭을 사용하므로 고용주, 피고용주의 갑, 을 관계가 굉장히 약하다. 따라서 직장 내 스트레스가 약사가 할 수 있는 다른 직업 및 여타 직업에 비하여 상당히 낮은 편이다.

 

내가 근무하던 시절에는 한 해 약사가 1200명 나오던 때였는데 특히나 약사를 구하기 쉽지 않았다. 내가 원하면 집에서 도보로 걸어서 근무할 만한 약국을 찾아서 근무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만큼 페이약사를 구하는 자리가 많았고 개국약사는 페이약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페이약사가 쉽게 그만둘 수 있었고 개국약사는 그만두지 않길 바라는 입장이므로 아무리 급여를 주는 입장이라도 갑, 을 관계가 성립하지 않았다.

 

따라서 ① 직장생활에서 받을 수 있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점, ② 급여가 다른 진로보다 많다는 점, ③ 결국에 다들 약국을 차리게 되기 때문에 되도록 빨리 로컬에 나가는 게 유리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다수가 약국을 선택하고 있었다.

 

 

4. 제약회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길을 택하는 약사들이 있었다. 우선 제약회사가 있는데 이 길을 택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남자였다. 남자였던 이유는 제약회사에서 근무하게 되면 군복무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현역(고등학교 졸업하자 마자 바로)으로 약대를 입학한 학생들은 군대를 갔지만 재수, 삼수 이상의 남자들은 나이가 많아 군대를 가기에는 걱정스러운 점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길이 대학원에 가는 길이었다.

 

석사를 마치게 되면 방위산업체(제약회사 연구원으로 3년 근무)로 군복무를 대체할 수 있거나 박사까지 마치게 되면 박사를 5년하는 대신 군복무를 대체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 군대를 현역으로 들어가서 평생의 트라우마를 가지기 보다 남들보다 긴 길을 가는 방법을 대신 택하는 것이다. 그렇게 석, 박사를 하고 나오면 특히나 박사까지 하고 나와서 약국에서 일을 하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법이다. 그래서 박사까지 한 동기들은 대부분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약국보다 좀 더 복잡한 일을 하고 업무에 대한 성취감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연구가 자신에게 적성이 맞는다면 군복무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 연구원으로서 연봉도 작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유리하고 추천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된다.

 

 

5. 대학병원

 

이 길을 택하는 사람은 졸업 후 초반에 많다.  10~20%까지 차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중에 병원에 남아있는 사람은 매우 소수이고 내 동기들 중에서는 1~2명 있을까 싶다. 단체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 약국보다 낮은 급여, 당직근무 등 이런 이유로 처음 몇 년 근무 후 약국으로 가게 된다. 너무 기승전약국 같지만 나이가 들 수록 벌이가 중요해지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물론 병원근무의 장점은 있다. 페이약사처럼 몇몇 약국을 돌아다니며 근무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안정감이 있다.  그리고 당직이나 주말근무를 몇 번 하다보면 페이약사와 급여가 별로 차이가 나지 않거나 앞지르는 경우가 있다. 직업 안정성 그리고 휴가를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 약사들이 많이 선택하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