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한 번 정도 티스토리에 들어오는 것 같은데, 최근에 티스토리 어플에 들어가서 알람을 켰었다.
아주 적지만, 댓글을 달아주신 분이 있기도 해서 그에 대한 답변을 가까운 시일에 못 드린 경우도 있어, 내 핸드폰의 대부분 어플은 알람을 꺼두었지만, 티스토리는 혹시나 해서 알람을 켜두었다.
그러던 중 어제 저녁에 진지한 질문의 댓글이 달린 걸 보았다. 그에 대한 응답으로 짧은 글을 작성하고자 한다.
그 댓글의 요지는 의대 생활의 어려움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래서 약대로 진로를 변경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는 의대생의 댓글이었다.
내가 그 분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알 수 없고, 어떤 마음인지 온전히 다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쉽사리 내 입장을 얘기하는 것은 나의 오만이라고 생각된다. 그래도 조금 더 경험한 나의 입장을 조언이라는 구색을 빌어 한 자 적어보고자 한다.
내 생각에는 의대 공부량이 어마무시하게 많긴 하지만, 그 모든 양의 공부를 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1등급이 목표가 아니라, 내가 의사가 되는 게 목표를 세우고 공부를 한다면 그 공부의 양은 벅차지만은 않다. 취미활동, 연애 등을 모두 다 하면서 삶 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보다 성적이 뒤쳐진다는 불안감 내지 열등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다. 의대를 들어올 정도의 학습수준을 갖춘 사람들은 의대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잠재력은 다 가지고 있다. 공부를 잘 하는 게 잘 사는 것은 아니다. 잘 사는 것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공부를 잘 하는 건 그 중 하나일 뿐이다.
글을 이렇게 계속 쓰다보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정리를 해야할 것 같다. 축약해서 말하자면,
1. 의대를 졸업하기만 하면 된다. 졸업을 위해서 공부를 잘 할 필요는 없다.
2. 골학이 어려워보이지만, 골학 못해도 졸업은 한다. 처음엔 다 커 보이지만 실상 별 게 없는 것들이다.
내가 중학교 때는 삼각함수가 엄청 어려운 거라 아무나 못 푸는 거라는 얘기를 삼촌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수학은 정말 너무 어려워서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내가 막상 고등학생이 되어보니, 정말 기우에 불과하였다. 의대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커 보이고 깊이 들어가면 어렵지만, 실상 졸업을 위해서는 그리 어려운 것들이 아니다.
3. 꼭 인턴, 레지던트 수련을 받을 필요 없다.
일반의로서 일하는 선생님들도 꽤 있고, 심지어 전문의를 따고서도 자신의 전공을 버리고 다른 일을 하시는 분들도 많다.
4. 인턴, 레지던트가 편한 곳도 있다.
대학병원에서만 일할 필요도 없다. 2차 병원에 숨겨진 꿀 인턴이 있고, 여러 전공 과 중에서도 편한 과들이 몇 개 존재한다.
5. 의사진로는 정말 너무나도 다양하다.
자신의 적성에 안 맞는다고 그만두기에는 아쉽다. 의사의 영역 중에 적어도 하나는 적성에 맞는 것이 있을 것이다.
6. 의대에서도 아웃사이더가 가능하다.
졸업만 해도 되면, 성적을 위해 동아리나 선배와 엄청 가까워지지 않아도 괜찮다. 본교출신으로 마이너과를 가는게 목표가 아니라면 마음을 놓고, 아웃사이더가 되어도 된다. 동기들이 모두가 당신을 버리지 않는다. 족보는 어차피 다 같이 챙겨 줄테고, 조용히 학교만 다녀도 괜찮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선배들이나 동기들도 관심이 점점 희미해져 앞으로의 자기 진로에만 관심이 있지 누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크게 관심이 없어진다.
난 지난 날을 생각하면 내가 왜 그렇게 까지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 많은 것을 놓치며 살아갔을까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공부가 중요할 수 있으나 소중하지는 않다. 그러니 조금은 그 목표를 조금은 놓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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